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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기 납치된 남편, 반세기 넘게 기다렸지만···피해자 아내 끝내 별세 “애통”

기사승인 2021.11.23  21: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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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작원, 1969년 12월 11일 대한항공 여객기 납치
전후 납북 피해자 3,835명 중, 516명 아직도 북한 억류 중
北공작원 김현희, 1987년 11월 29일 KAL858기 납치 폭파 테러

52년 전 북한 정권에 납치된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반세기 넘게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의 꿈은 결국 산산조각났다. 그녀 역시 세상을 떠난 탓이다.

아들은 비통함을 금치 못했다. 그는 남북한 정부에 아버지의 생사 확인과 송환 노력을 거듭 촉구했다.

❚북한 공작원, 1969년 12월 11일 대한항공 여객기 납치

‘1969년 KAL기 납치피해자가족회’의 황인철 대표는 20일 모친인 양석례 여사가, 이날 84세의 일기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어머니가 52년 동안 아버지 황원 씨를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기다렸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이날 먼저 눈을 감으셨다”며 애통해했다.

KAL기 사건은 북한 공작원의 대한항공 여객기 납치 사건이다. 공작원은 1969년 12월 11일 강원도 강릉에서 출발해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를 납치했다.

❚전후 납북 피해자 3,835명 중, 516명 아직도 북한 억류 중

이듬해, 북한은 당시 탑승자 50명 중 39명은 송환했다. 그러나 MBC 방송 PD였던 황원 씨 등 승객 7명과 승무원 4명은 끝내 돌려보내지 않았다.

유엔은 지난해 이 사건을 자의적 구금 등 강제실종 피해로 판정했다. 이후 생사 확인 및 송황을 거듭요청했지만, 북한 당국은 묵묵부답이다.

황인철 대표는 20일 VOA에 “너무 비통하다”고 말했다. 그는 두 살 때 아버지와 헤어졌다.

1999년 이산가족 상봉 때, 황 대표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만나기 원했다. 그러나 대한적십자로의 답변은 생사 확인 불가란 답장뿐이었다.

정부와 유엔 등에 따르면, 북한은 625남침전쟁 때 민간인 10만 명을 납치했다. 전후 납북 피해자는 3천 835명이고, 이 중 516명이 아직도 북한에 억류 중이다.

❚北공작원 김현희, 1987년 11월 29일 KAL858기 납치 폭파 테러

북한의 남한 항공기 관련 테러는 이뿐이 아니다. 폭파 사건으로 104명 이상의 인원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KAL 858기는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해 2차 경유지인 방콕으로 들어오는 도중 사라졌다. 탑승객 104명과 승무원 11명이 전원 실종됐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유해나 유품을 발견하지 못했다.

사건의 전말을 이렇다. 김정일은 김승일과 김현희에게 폭파 지령을 내린다. 체포된 김현희(김승일은 자결)에 따르면, 두 사람은 각각 라디오와 술병으로 위장한 시한폭탄을 선반 위에 놓아둔 채 중간 기착지인 아부다비에서 내린다.

이후 KAL858기는 바다 위 공중에서 폭파된다. 북한이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방해할 목적으로 일으킨 의도적인 폭파 사건이었다. 

 

 

박철호 press@bluetoday.net

<저작권자 © 블루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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