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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6.25 남침전쟁, 대한민국을 도와준 나라들 (21) 미국 ② 전투 및 개황

기사승인 2016.06.30  10: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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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마고지 전투 등 국군과 함께 공산군에 맞서…1948년부터 한미관계 시작

1950년 6월 25일은 북한 공산군이 남한을 불법 남침한 6·25 전쟁이 벌어진 날입니다. 6·25남침 전쟁에는 세계로 확산하던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변두리 국가’였던 남한에 참전해 피를 나눈 국가가 있었습니다.

6·25 남침전쟁은 같은 동포가 우리에게 칼을 겨룬 전쟁이자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간 첨예한 대립이 빚은 국제적인 비극입니다.

본지에서는 6·25 남침전쟁 66주기를 맞아 UN참전 용사의 호국정신을 되새기고자 북의 공산화 전략으로부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친 UN 소속 국가의 참전 배경에 대한 기획특집을 연재합니다.

▲ 국제 기구 및 UN회원국들 브라질, 대만, 쿠바, 에콰도르, 아이슬란드, 레바논, 리베리아, 멕시코, 니카라과, 파키스탄, 파라과이, 페루, 우루과이 그리고 베네수엘라도 전쟁 기간 동안 한국에 대한 물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 인터넷 캡처

1950년 6월 25일,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한다. 유엔은 3일 뒤인 28일 제2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 연합군을 결성하여 파병할 것을 결의했다.

유엔 연합군의 이름으로 전투병력과 장비 등을 보낸 전투지원 16개국과 병원선, 의료진, 의약품 등을 보급한 의료지원 5개국 등으로 총 21개국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을 결정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에 가장 많은 수의 병력 파병과 지원에 앞장섰던 동맹국가 미국의 6·25 남침전쟁 참전 주요 전투 및 개황을 알아보자.

미국 6.25 참전 주요 전투

▲ 중공군의 저지선을 뚫고 이동하는 미 해병대 ⓒ 국가보훈처 블로그 캡처

미국은 6·25 참전국 중 가장 참전규모가 크다. 참전연인원은 1,789,000여명이었고 우리 국군과 함께 전쟁기간 많은 전투에 참여했다.

전쟁기간 미국군은 전사 3만 6940명, 부상 9만 2134명, 실종 3737명, 포로 4439명의 인명손실을 겪었다.

미국군이 국군과 함께 북한 공산군과 중공군에 맞선 주요전투는 다음과 같다.

백마고지 전투

6·25전쟁 사상 가장 치열하게 진지전이 전개됐던 시기인 1952년 10월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395고지)를 확보하고 있던 국군 9사단이 미군과 함께 중공군 38군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열흘 동안이나 이를 막아내며 고지를 사수한 전투다.

장진호전투

동부전선의 미 제10군단 예하 미 제1해병사단이 서부전선부대와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 장진호 북쪽으로 진출하던 중 중공군 제9병단 예하 7개 사단 규모가 포위망을 형성한 장진호 계곡을 벗어나기 위해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2주간에 걸쳐 전개한 철수작전이다.

당시 유엔군은 중공군의 참전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 생각하고 승리를 예상했으며, 함경남도 장진군에 있는 장진호에 해병대를 주둔시켰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대규모 중공군이 개입했고 유엔군은 이로 큰 타격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치자 미 제10군단장은 우측에는 국군 제1군단을, 중앙에는 미 제7사단을, 좌측에는 미 제1해병사단으로 배치하여 국경선으로 진격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11월 27일, 중공군의 공격으로 전투가 시작됐고 장진호 근방에 배치되어 있던 미 해병대는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당한다.

중공군의 개입이 점차 커지면서 장진호 지역의 상황이 급격히 심각해지자 11월 30일, 미 제10군단장은 하갈우리에서 작전회의를 열었다. 같은날, 유엔군사령부의 철수명령이 접수됐다.

미 제1해병사단의 제5연대와 제7연대는 유담리에 대한 중공군의 공격을 격파하고 하갈우리에 진입하며 유담리 포위망을 돌파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12월 7일, 미 제1해병사단의 활약으로 병력을 모두 집결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고, 12월 11일 미 제1해병사단은 진흥리를 통과하고 철수하는 데까지 모두 성공해 장진호 전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

▲ 한국 해병대가 1950년 9월 15일 적색해안으로 명명된 상륙목표지점으로 상륙하고 있다. ⓒ 인터넷 캡처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해 6·25 전쟁의 전세를 바꾼 전투다.

6·25전쟁이 일어난 후 조선인민군은 남진을 계속하다 국제연합군의 참전으로 낙동강에서 교착상태를 맞게 되었다. 이에 국제연합군은 조선인민군의 허리를 절단하여 섬멸한다는 계획을 세워 첫 작전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게 되었다.

제1단계로 9월 15일 오전 6시 한·미 해병대는 월미도에 상륙하기 시작하여 작전개시 2시간 만에 점령을 끝냈다.

2단계로 한국 해병 4개 대대, 미국 제7보병사단, 제1해병사단은 전격공격을 감행하여 인천을 점령하고 김포비행장과 수원을 확보함으로써 인천반도를 완전히 수중에 넣었다.

마지막 제3단계로 한국 해병 2개 대대, 미국 제1해병사단은 19일 한강을 건너 공격을 개시하고 20일 주력부대가 한강을 건너 27일 정오 중앙청에 한국 해병대가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작전을 끝냈다.

이를 바탕으로 약 13일 만에 서울을 수복하는 전과를 올렸고 과감한 작전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고 전세를 일거에 뒤집었다는 점에서 인천상륙작전은 세계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상륙작전으로 기록된다.


미국 개황

▲ 미국 워싱턴 참전 기념 공원 ⓒ 인터넷 블로그 캡처
∙기후 : 전반적으로 따뜻하지만 남북의 위도차가 24°나 되는 대륙인만큼 기후 차이가 크며 북위 40°선을 중심으로 한 온대에 위치한다.
∙주요도시 : 뉴욕(849만 명), 로스엔젤레스(393만 명), 시카고(272만 명), 휴스턴(224만 명), 필라델피아(156만 명)
∙민족 : 백인(70.6%), 흑인(13.2%), 아시아인(5.4%)
∙언어 : 영어
∙종교 : 기독교/가톨릭(70.6%), 유대교(1.9%), 이슬람(0.9%), 무교(22.8%)
∙정부형태 : 연방공화국(대통령 중심제)
∙의회 : 상∙하 양원제

미합중국은 미주대륙 북부에 위치하며 그 면적은 9,372,610km2에 달해 세계 3위를 차지한다. 16년 2월 기준 인구가 323,044,079명, 수도는 워싱턴 D.C인 연방공화국 대통령 중심제 국가다.

주요 경제 지표를 보면, GDP는 2015년 실질 GDP기준, 16조 3,418억 달러다. 15년 기준 1인당 GDP는 56,300달러를 기록했으며, 실업률은 5.3%, 물가상승률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7%,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1.0%이다.

환율은 15년 서울외환시장 종가 기준, U$1=KRW1,172.5이다. 부채는 15년 평균치가 18조 2,397억 달러에, 외환보유고는 1,184억 5,700만 달러에 달한다.

산업구조를 보면, 금융∙부동산이 20%를, 정부부문 13.1%, 제조업 12.1%, 전문서비스 11.9%, 도소매 11.8%, 교육/의료 8.2%를 차지한다. 주요 수출품목은 기계류, 전기전자기기, 석유화학, 자동차 및 부품, 항공우주이고, 수입품목은 석유화학, 기계류, 전기전자기기, 자동차 및 부품, 광학기기 등이다.

한-미국 관계

▲ 2014년 미국 6.25 참전용사 감사 행사 ⓒ 블루투데이

양국은 ▲1948년 12월에 대한민국 및 미합중국간의 원조협정 ▲50년 1월 상호 방위 원조 협정 ▲50년 7월 주한 미국 군대의 관할권에 대한 협정 ▲53년 10월 상호 방위조약 ▲56년 원자력의 민간 이용에 관한 협력을 위한 협정 ▲57년 4월 항고 운수 협정 ▲64년 석유협정, 66년 SOFA ▲72년 원자력의 민간이용에 관한 협력을 위한 협정 ▲76년 소득에 관한 조세의 이중과세 회피와 탈세방지 및 국제무역과 투자 증진을 위한 협정 ▲87년 군사비밀 보호에 관한 보안 협정 ▲2007년 12년 한-미 FTA협상 타결 및 서명 등을 체결했다.

양국 교역현황은 교역규모와 교역품으로 구분 가능하다. 먼저 규모현황을 보면, 15년 수출액은 단위 백만 달러 기준 69,832로 14년의 70,285에 비해 소폭 감소했고 수입액도 44,024로 작년 45,283에 비해 줄었다. 반면, 무역수지는 15년에 25,872백만 달러에 달해 14년 25,002백만 달러에 비해 소폭 상승했다.

▲ 2014년 미국 6.25 참전용사 감사 행사 ⓒ 블루투데이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은 철도 및 부속품, 전기기기와 부분품, 연료, 철강, 플라스틱이며 수입품목은 원자로와 보일러 및 부분품, 전자기기와 부분품, 광학기기/검사기기/의료용기기, 항공기와 부분품 등이 있다.

투자 교류 현황으로는 우리나라의 대미 직접투자액이 15년 104.2억 달러이며 미국의 대한 직접투자액은 14년 25.5억 달러를 기록했다.

교민 수는 14년 12월 말 기준으로 2,232,690명이다.

▲ 2014년 미국 6.25 참전용사 감사 행사 ⓒ 블루투데이

류진석 기자 press@bluetoday.net

<저작권자 © 블루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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