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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6.25 남침전쟁, 대한민국을 도와준 나라들 ⑭ 필리핀

기사승인 2016.06.20  1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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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미국·영국에 이어 부산에 상륙…진상리 전투 등 혁혁한 전과세워

1950년 6월 25일은 북한 공산군이 남한을 불법 남침한 6·25 전쟁이 벌어진 날입니다. 6·25남침 전쟁에는 세계로 확산하던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변두리 국가’였던 남한에 참전해 피를 나눈 국가가 있었습니다.

6·25 남침전쟁은 같은 동포가 우리에게 칼을 겨룬 전쟁이자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간 첨예한 대립이 빚은 국제적인 비극입니다.

본지에서는 6·25 남침전쟁 66주기를 맞아 UN참전 용사의 호국정신을 되새기고자 북의 공산화 전략으로부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친 UN 소속 국가의 참전 배경에 대한 기획특집을 연재합니다.

▲ 국제 기구 및 UN회원국들 브라질, 대만, 쿠바, 에콰도르, 아이슬란드, 레바논, 리베리아, 멕시코, 니카라과, 파키스탄, 파라과이, 페루, 우루과이 그리고 베네수엘라도 전쟁 기간 동안 한국에 대한 물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 인터넷 캡처

1950년 6월 25일,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한다. 유엔은 3일 뒤인 28일 제2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 연합군을 결성하여 파병할 것을 결의했다.

유엔 연합군의 이름으로 전투병력과 장비 등을 지원한 전투지원 16개국과 병원선, 의료진, 의약품 등을 지원한 의료지원 5개국 등으로 총 21개국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을 결정했다.

오늘은 16개 병력지원국 중 필리핀의 6·25 남침전쟁 참전 배경 및 필리핀의 개황에 대해 알아보자.

필리핀의 6·25 남침전쟁 참전 배경

▲ 부산에 도착한 첫 필리핀군대 ⓒ 국가보훈처 블로그 캡처

1949년부터 50년까지 유엔 총회 의장이었던 필리핀의 카를로스 로물로 장군은 대한민국의 국제적 방어를 옹호하는 입장을 확고하게 펼쳤다. 카를로스 장군은 대한민국에 군을 파병하는 행위 자체가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1950년 9월 25일 유엔 총회가 있기 전, 그는 한반도에 대한 유엔안보리의 군사적 조치 결정에 부응하고 북한의 공격행위에 대항할 집단 안보 조치의 강화 차원에서 위와 같은 입장을 밝혔다.

앞선 1950년 9월 7일, 필리핀 정부는 필리핀의 군 지원을 골자로 하고 의회가 제정한 조치를 통해 유엔의 결의에 동의했다. 이를 통해 필리핀은 공산주의 공격에 대한 격퇴 차원에서 대한민국에 원정군을 파병할 수 있게 됐다.

1950년 9월 19일, 필리핀군은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부산에 상륙했다. PEFTOK라 불린 필리핀 원정군은 6·25남침 전쟁에 참전한 유엔 위원회 산하 육군 전투부대 중 8번째에 해당했다.

▲ 필리핀 참전군 ⓒ (사) 6.25 진실 알리기본부 캡처

6·25 전쟁 중 필리핀 원정군이 참여한 전투

필리핀 원정군은 6·25전쟁 기간 부산에 도착한 후 후방지역 공산 게릴라 소탕작전을 벌였다. 1·4후퇴 후에는 전열을 정비한 유엔군의 반격이 전개되자 서부 전선에 투입됐다.

특히 전곡 진상리 전투(51년 4월 11일), 연천 율동 전투(51년 4월 22일), 적성 설마리 글로스터대대 구출작전(51년 4월 24일), 철원 에리고지 전투(52년 5월 18일), 양구 크리스마스고지 전투(53년 7월 15일) 등에 참여해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1951년 12월 25일 강원도 양구군의 1090고지에서 4일 간 벌어진 전투에서 필리핀 참전군들은 중공군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국군과 끝까지 싸웠고, 12월 28일 기습공격으로 중공군을 격퇴하기도 했다.

필리핀 개황

▲ 필리핀 ⓒ 위키백과 캡처
국명 : The republic of the Philippine
위치 : 동남아시아
면적 : 300,179km2(한반도의 1.3배, 7.107개의 섬으로 구성)
기후 : 고온 다습 아열대성 기후, 건기(11~5월), 우기(6~10월)로 구분
수도 : 메트로 마닐라
인구 : 1억 767만 명(세계 12위 / 동남아시아 2위)
주요 도시 : Metro Manila(1천 145만 명)
언어 : 필리핀어, 영어, 지방 토착언어
종교 : 로만 가톨릭(83%), 기독교(9%), 회교(5%), 기타 종교
정부형태 : 대통령 중심제
입법부 : 양원제(상원 24명, 하원 285명)

동남아시아에 있는 필리핀은 300,179km2의 면적을 갖고 있으며 인구는 1억767만 명의 대통령 중심제 국가다.

주요 경제 지표를 보면, 2014년 기준 필리핀의 명목 GDP는 2,848억 달러로서 2013년 1인당 GDP는 2,772달러, 14년 2,955달러다. GDP 성장률은 5.8%(2015), 물가 상승률은 1.4%(2015), 실업률은 5.6%(2016.02)에 이르고 화폐단위는 페소를 사용한다.

환율은 1$=47.54이며 외채는 756억 달러, 외화보유액은 805억 달러다. 산업구조를 보면, 3차 산업이 59%로 가장 큰 비중을, 2차 산업은 32.4%, 1차 산업은 8.6%의 비중을 차지한다. 주요 수출품으로는 반도체, 전자제품, 광물, 가구, 화학제품, 코코넛 및 과일류가, 수입품은 반도체부품, 광물연료, 운송장비, 산업용 기계, 가전제품 등이 대표적이다.

▲ 지난 23일 필리핀 레이테주(州)에 태풍피해 복구임무를 수행 중인 필리핀 아라우부대 주둔지에 필리핀군(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소피오 로브리고 레이테주 참전용사 회장이 찾았다. 필리핀은 6·25 전쟁 당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전투병력을 파병했으며, 연인원 7천420명이 참전해 398명이 전사했다. 이에 아라우부대는 재해복구 지원 임무는 물론이고 참전용사 지원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레이테주에 거주하는 6·25전쟁 참전용사를 찾아 주택복구, 진료지원, 생필품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사진은 아라우부대가 6.25전쟁 참전용사들과 기념촬영하는 모습. 2014.3.30 ⓒ 연합뉴스

한-필리핀 관계

양국은 2007년 12월에 대외경제협력기금 차관 기본약정을 시작으로, 2008년 형사법 공조조약, 2011년 대외경제협력기금 차관 기본약정, 2013년 1월 한-필리핀 경제 통상 협력 양해각서, 2013년 9월 한-필리핀 치안분야 협력 양해각서, 2013년 10월 한-필리핀 국방분야 협력 양해각서와 체육교류 협력양해각서, 2014년 한국 문화체육관광부-필리핀 지식재산청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 분야 교류, 협력 양해각서 등을 체결했다.

한국의 대필리핀 수출액은 2015년 기준 83억 3,203만 달러, 대필리핀 수입액은 32억 5,123만 달러다. 대필리핀 주요 수출품으로는 2015년 기준 반도체, 석유제품, 자동차 등이, 수입품은 반도체, 곡실류, 동제품 등이 있다.

한국의 대필리핀 투자교류 현황으로 투자금액은 2015년 9월 누계 46억221만 달러, 15년 9월 기준 1억 7,402만 달러에 이르고 투자 건수는 3,993건이다.

현재 필리핀 현지 한국 교민 수는 12만여 명, 한국 체류 필리핀인은 4.75만 명으로 측정된다.

류진석 기자 press@bluetoday.net

<저작권자 © 블루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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