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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화 목사] 감사의 삶이 회복되는 추수감사절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5.11.12 08:26

   
▲ 임 용 화 목사
11월 셋째 주일은 추수감사절이다. 올해는 11월 15일이다. 많은 교회들이 이 날을 준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준비한다.

추수감사절의 시작은 잘 아는대로 영국 국교회에 대한 프로테스탄트 운동에서 시작된다. 초기 102명의 필그림파더스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나 신대륙에서 1621년 첫 수확을 감사하며 드렸고, 1789년 11월 워싱턴대통령이 국경일로 정한 후 1941년 의회가 11월 제 4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고 공휴일로 제정하여 지금에 이른다.

구약성서에서 유태인들은 그들의 역사 속에서 3대 명절을 지켰는데 민족해방을 기념하는 유월절과 첫 열매의 수확에 대한 감사절인 맥추절, 가을 곡식을 거둬들이는 초막절을 지켰다.

각국을 보면, 영국은 8월 1일 라마스날을 추수감사절로 지내고 독일의 복음주의 교회는 성 미카엘의 날(9월 29일) 후의 일요일을 감사절로 지켰다고 한다. 캐나다에서는 10월 둘째 월요일로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미국의 청교도들로부터 시작된 감사절의 영향으로 1908년 예수교장로회 제2회 대한노회에서 양력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정했다.

그 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회 총회에서 감사일을 음력 10월 4일로 정했다. 1914년 제3회 총회에서 감사일을 11월 셋째 주일 후 수요일로 정한 뒤 현재는 11월 셋째 주일에 감사절을 지키고 있고 종종 추석을 기해 토착적 신앙을 이유로 추석을 기해 추수 감사절로 지키기도 한다.

추수감사의 기본적인 의미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이웃에 대한 나눔의 실천이다.

이제 우리는 2015년도 추수감사절을 맞고 있다. 올해 추수감사절은 교회만의 리그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제를 올리고 마을 공동체와 함께 기쁨을 함께 나누며 가진 것을 돌려 먹었던 우리 조상들처럼, 인디언 부족들을 초청하여 함께 음식을 나누었던 청교도들처럼, 서로가 함께 하는 추수감사절이 되기를 바란다. 교회는 결국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발생하는 공동체이다.

사회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생산해 내고 그 패러다임을 통해 교회, 혹은 성도가 가진 것을 밖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이런 생산과 소비가 그 속에서만 이루어진다면 생명력을 잃어버린 사해와 같은 처지에 이를 수 있다. 우리들만의 추수감사절이 아닌 밖으로 소비해 낼 수 있는 소비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들 중 대다수는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낀다고 한다. 이는 교인들도 마찬가지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는 아마도 감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 안에는 감사를 방해하는 세 가지 적들이 있다. 이것을 바로알고 극복하면 우리는 감사할 수 있고 감사 할 수 있기에 행복할 수 있다. 첫째로 우리 속에 욕심이 있으면 감사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끝도 없고 한도 없는 욕심에 사로잡히면 감사는커녕 욕심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 결코 욕심과 감사는 함께 갈 수 없다. 욕심이 크면 감사가 적고 감사가 크면 욕심은 작아지는 법이다.

두 번째로 우리 속에 비교의식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고 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치 않고 항상 남하고 비교해보면서 내가 남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면 우월감에 빠져 교만하게 되고 내가 남보다 적게 가졌다고 생각되면 항상 상대적 빈곤감에 빠져 열등감에 처할 때가 많이 있다. 우월감이나 열등감은 건전하고 건강한 마음이 아니다. 특히 열등감이 심하면 원망하게 되고 불평하며 나중에 절망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자기 속에 남하고 비교하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원망과 불만 속에 자신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셋째로 내 속에 염려와 근심이 우리로 하여금 감사하지 못하게 한다. 성경은 ‘근심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매일매일 걱정하지 말고 감사하며 살라는 말씀이다. 근심과 걱정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11월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내 속에 욕심과 비교의식과 염려를 믿음으로 극복해 감사의 삶이 회복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 주변을 돌아보고 교회가 교회로서의 올바른 방향을 갖고 있는지를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천안성문교회 담임/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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