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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불감증과 국정원의 대공(對共) 수사권

기사승인 2023.02.10  17: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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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윤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수석 연구위원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12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전쟁 발발전 우크라이나 국민 대다수는 ‘겁을 주기 위한 푸틴의 심리전일 뿐 슬라브족 형제끼리 결코 전쟁은 없을 것이다’라고 전망했고 러시아가 대규모 병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상황에서도 전쟁의 징조로 받아들인 이들은 소수였으며 당시 국방장관조차도 위기 상황을 일축할 정도로 안보불감증이 만연해 있었다. 현재 양측 전사자가 각각 1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참혹한 전쟁의 참상 앞에서 우크라이나 상황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안보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은 어떠할까. 해외에서는 한반도를 가장 위험한 지역중 하나로 보지만 정작 우리 국민들은 안보에 둔감하다. 북한의 안보위협에 대한 ‘2021년 통일연구원(KINU)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핵위협이 걱정된다’는 응답은 42.5%에 불과했고, 북핵이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18.6%만이 그렇다고 답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도 안보불감증이 만연해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계속하고 무인기가 우리 상공을 휘젓고 다녀도 한가하게 정치적 공방만 하다 마는 것이 우리의 안보현실이다.

이러한 안보불감증을 극명하게 보여준 하나의 단적인 사례가 ‘국정원 대공수사권’ 박탈이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정상이 판문점을 오가며 파안대소하는 모습에서 한반도에 봄이 온 듯하였다. 일각의 주장처럼 국가보안법과 대공수사권은 남북화해의 거추장스러운 장애물 정도로 여겨졌고, 정보기관에 대한 적대적 인식을 가진 친북 세력들에게는 대공수사권을 박탈할 절호의 기회였다. 대공수사권이란 간첩이나 국가전복 등 범죄에 대한 수사권한이다.

2020년 12월 13일 민주당은 종북·좌파 세력들의 경도된 주장에 동조해 권력기관 개혁 명분으로 국정원법 개정을 추진하였다. 여야 협상 대신 다수의 힘으로 대공수사권을 박탈하고 3년 일몰 규정을 두어 2023년 12월 31일이면 자동 소멸되도록 하였다. 60여 년간 대한민국 안보의 버팀목 역할을 해 온 대공수사권이 이렇듯 허무하게 폐지 수순에 접어든 것이다.
 
다행히 최근 적발된 간첩사건으로 대공수사권 문제가 재점화되었다. 지난 정권 말기 소위 ‘검수완박’의 경우, 언론의 집중 조명으로 국민들의 관심이라도 받았지만, 국가안위와 직결된  ‘국수완박(국정원 수사권 완전박탈)’의 경우는 정권 초기 전광석화처럼 추진되어 대공업무 관련자 이외 일반 국민들은 그 심각성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다. 이 번 간첩사건으로 대공수사권의 중요성을 알릴 기회라도 가졌으니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제주, 창원, 전주 등지에서 잇따라 적발된 간첩사건을 보면 북한 대남공작기관은 남북화해 분위기가 무르익던 당시에도 진보단체 인사 등을 동남아로 불러 간첩교육을 하고 반미 반정부 투쟁 등 대남공작을 지속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이 평화를 가장한 북한의 두 얼굴이다.

대공수사권 박탈의 명분으로 내건 과거 ‘간첩조작 의심 사건’들도 정보기관을 매도할 요량으로 침소봉대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재심 무죄’ 간첩사건의 경우 사건의 실체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편향된 인사들로 꾸려진 과거사위 위원들이 당시의 상황은 도외시한 채 오늘날의 엄격한 형사절차를 적용해 판단한 측면이 있었다. 또한 대공수사활동은 출처나 휴민트 보호 등을 위해 법정에서 정보활동의 이면을 일일이 설명하지 못하는 억울한 속사정도 있다.

위법성 판단이 곤란한 회색지대 업무가 많은 대공수사의 특성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계기로 북한은 직접침투 대신 중국 및 동남아를 우회침투 전진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접선 지령수수 등이 해외에서 이루어져 그만큼 대공수사가 어려워졌다. 특히 중국은 북한과의 특수관계로 형사공조를 기대할 수도 없다. 범증 입수는 휴민트를 동원해야 하지만 검증할 방법이 제한적이고 검증은 또 다른 첩보활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있다. 이같이 대공수사활동은 국가안보와 국익을 위해 합목적적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데도 오직 합법의 잣대로만 보고 ‘조작기관’으로 매도해왔다.

이러한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정치권이 대공수사권을 두고서 정쟁으로만 일관하고 있어 답답하고 안타깝다. 노동계 등 강성 진보세력의 눈치를 보며 개혁 일환으로 밀어붙인 민주당의 사정이나, 야당을 상대로 문제해결을 위한 진지한 협상 노력보다는 지난 정권 탓만하는 여당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동안 야당이 표면적으로는 인권 등을 거론하였지만 실상은 선거 등을 앞두고 불거지곤 했던 소위 ’안보장사‘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대공수사권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라면 원장 임기제 보장 등 정치적 중립화를 위한 제도적 개선책을 강구할 일이지 국가안위와 직결된 대공수사권을 탓할 문제는 아니었다.

경찰로의 이관을 추진한다지만 우리 같이 엄중한 안보상황에서 결코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이번에 적발된 간첩단 사건에서 보듯 북한 대남공작이 제3국을 통한 우회침투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해외방첩망은 필수적이다. 수사기법도 일반 형사범과는 달리 사이버, 과학. 북한 등 여러 부서와의 협조 및 인간정보(HUMINT), 기술정보(TECHINT) 등도 동원되어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보안성이 담보되고 해외방첩망을 가진 정보기관이 첩보입수와 범증수집을 하고 마지막 수사단계에서 방대한 경찰 수사력을 동원하는 현행 시스템을 유지해나가야 한다. 국가안보야말로 이중삼중의 대응이 필요한 가외성(加外性)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는 분야가 아닌가.

2023년 12월 31일 대공수사권 일몰시간이 하루 하루 다가오고 있다. 국정원 수사권의 경찰 이관은, 사실상 60여년간 축적되어온 소중한 안보자산인 ‘국정원 대공수사권’의 박탈을 의미한다. 다행히 여당발 ‘대공수사권 복원’ 주장과 ‘국정원법 개정안’이 발의된데 이어 尹 대통령도 우려를 표명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한 상황이다. 이제 야당이 대승적 차원에서 답할 차례이다. 쉽지 않겠지만 지난 정권 초기 졸속 처리된 사안인 만큼 ‘국가안보’관점에서 재논의에 임한다면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을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박탈은 북한 대남공작기관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그들에게 대남공작을 위한 비단길을 깔아줄 수는 없지 않은가. 평화는 튼튼한 안보가 담보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이재윤]
-과학수사학 박사
-동국대학교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겸임교수
-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행정학회 국가정보연구회 위원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수석 연구위원

 

News Desk press@bluetoda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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