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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연평도 포격도발 10주기···연평도 주민 “아직도 그 날에 대한 트라우마”

기사승인 2020.11.23  00: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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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11월23일, 170여발의 포탄을 쏟아부은 北의 만행···군 2명, 민간인 2명 사망
10년이 지나도, 잊혀 지지 않은 그 날의 기억...“아직도 그 날에 대한 트라우마”
연평도 주민 “꿈에도 포격 당시 대피소로 뛰어가던 사람들 모습이 자주 나와”

2020년 11월 23일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10주기다. 북한은 하늘의 비처럼 쏟아부었던 170여발의 포탄으로 4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19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사건 당시에도, 사과 대신 대한민국을 탓했던 북한의 만행은 여전히 살아서, 연평도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2010년11월23일, 170여발의 포탄을 쏟아부은 北의 만행···군 2명, 민간인 2명 사망

이 사건으로 해병대 장병 2명과 민간인 2명이 숨졌다. 중경상을 입은 군인과 민간인은 19명이었다. 가옥 수백 여 채가 파괴됐다.

전시상황에도 비무장한 민간인에게도 포탄을 쏟아 붓진 않는다. 북한은 그 날 오후 2시 반 연평도를 불바다를 만들었다.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오히려 대한민국을 탓했다. 연평도 해병대의 포격훈련에 따른, 정당한 군사적 대응이었음을 주장하며, 전적인 책임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망언을 쏟아냈다.

2019년 서부전선에 위치한 창린도 방어대를 시찰했던 김정은 (사진=북한선전매체)

▮10년이 지나도, 잊혀 지지 않은 그 날의 기억

10년이 지났지만, 연평도 주민들의 가슴 속 그 날은 쉬이 잊혀 지지 않았다.

10년 전 그날에 대해, 연평도 주민 김모(50·여)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린다”고 말했다.

포격 당시 남편이 운영한 가게에 있던 김씨는 “우리 군이 호국 훈련을 하는 줄 알았다”며 그러나 점점 가까이서 들리는 포탄 소리와 화염을 보고 깜짝 놀라 “아이들부터 찾았다”며 그 날의 충격을 전했다.

그러면서 “당시 연평도 주민들이 길에 아이들이 보이면 내 아이, 네 아이 상관없이 무조건 데리고 대피소로 뛰었다”며 “우리 큰 아이도 나중에 대피소에서 찾았다”며 긴박함 속 안도감을 표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아직도 그 날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 우리 군이 포 사격 하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긴장된다”며 잊혀지지 않는 아픔을 토로했다.

▮연평도 주민 “꿈에도 포격 당시 대피소로 뛰어가던 사람들 모습이 자주 나와”

그 날, 북한의 만행은 김씨 뿐 아니라 연평도 주민 다수를 괴롭혔다.
사건 발생 1년이 지난 뒤, 인천의 한 병원이 연평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외상 후 스트레스(PTSD) 검사에서 대상자 150명 가운데 상당 수가 높은 스트레스 수치를 보인 바 있다.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보일러나 냉장고 등의 작은 소음에도 괴로워했다.

2016년 웅진군보건소가 연평도 주민 206명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검사에서도, 49명이 PSTD 등을 앓는 고위험군에 속했다.

연평도 주민 박모(61·남)씨는 “꿈에도 포격 당시 대피소로 뛰어가던 사람들 모습이 자주 나온다”고 말했다.

 

김영주 press@bluetoday.net

<저작권자 © 블루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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