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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탈북 난민 1호 데보라씨 1만 달러 기부···“받은 사랑 다시 나누고파”

기사승인 2020.09.29  00: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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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미국 입국, 북한인권법 근거해 탈북 난민 인정받은 첫 사례
데보라 씨 “그저 받은 사랑을 다시 나누고 싶어”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 “힘든 시기에 뜻밖의 선물에 큰 위로”

지난 2006년 오전 로스앤젤레스 공항 인근의 에어포트힐튼호텔에서 열린 탈북 망명자 기자회견에서 탈북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나, 나오미, 요한, 신찬미, 데보라, 신요셉씨.(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美 탈북 난민 1호 데보라씨의 선행이 화제다.

▮14년 전 도움 기억한 데보라씨

탈북자 데보라 씨는 14년 전 미국에서 난민 지위를 처음으로 인정받는다. 한국 두리하나선교회(천기원 목사)의 지원 덕분이었다. 천기원 목사는 지난 20년간 수천명의 탈북민 구출에 기여했다.

데보라씨는 해당 단체에 1만 달러를 기부하며, 과거 절망과 위험에 처했을 때 받았던 사랑에 화답하고, 또한 탈북민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고 덧붙였다.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 “힘든 시기에 뜻밖의 선물에 큰 위로”

25일 VOA와의 통화에서 천 목사는 탈북민들이 잘 정착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며, 힘든 시기에 이런 뜻밖의 선물을 받게 돼 큰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단체 관계자들은 탈북민들의 이동이 힘들어졌다며, 북한과 중국, 동남아 국가들이 국내와 국경 경계를 대폭 강화한 탓이라고 밝혔다.

또한 후원을 받기조차 힘든 상황을 토로했는데, 한국 정부가 남북협력에 주력하는데 반면 북한 인권과 탈북민에 대한 관심은 줄었음을 지적했다.

▮데보라 씨 “그저 받은 사랑을 다시 나누고 싶어”

데보라 씨는 25일 VOA와 인터뷰에서, 소식이 알려지는게 매우 부끄럽다며, “그저 받은 사랑을 다시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태껏 받은 사랑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잘 정착했으니 저희가 앞장서서 같은 탈북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그런 마음이 생겨서 기꺼이 하게 됐다”라고 전했다.

데보라씨는 북한에서 전화 교환수를 했다. 20대 초반 탈북한 그는, 두리하나선교회의 도움으로 동남아를 거쳐 지난 2006년 5월 미국에 입국한다. 북한인권법에 근거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첫 사례다.

지금은 미 동부의 한 도시에서 해산물 상점을 운영 중이다. 우한폐렴의 여파로 어려웠으나, 사업전략을 바꾸면서 최근 많이 회복됐다고 전했다.

 

박철호 press@bluetoday.net

<저작권자 © 블루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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