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미관계’를 ‘미북관계’ 등의 표현으로 써야....
지난 2002년에 우리나라와 일본의 공동 주관으로 열린 한일월드컵의 주최국 표기 순서는 외국에서도 ‘KOREA/JAPAN’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피 말리는 외교전을 벌인 끝에 결승전을 일본에서 치르는 대신 우리나라는 개막전을 맡았고 공식 대회 명칭에서 일본보다 먼저 표기되는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축구, 야구 등의 스포츠 경기가 벌어질 때 우리나라에서는 한일전이라고 표기하고 일본에서는 일한전(日韓戦,닛칸센)이라고 표기한다. 이렇듯 둘 이상의 명칭을 병기할 때는 우리나라를 가장 앞에 표기하며 이후에는 ‘한-미-일’, ‘한-미-중’, ‘영-일 동맹’ 등 우리나라와 가까운 순서대로 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북한을 다룰 때에는 ‘북-미관계’, ‘북-미-일 3자교섭’ 등으로 표현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건국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와 끈끈한 동맹을 맺고 있다.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한반도를 해방시킨 미국은 이후 건국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고 6.25 전쟁을 치룰 때는 김일성의 적화야욕에 맞서 유래 없는 물적 지원과 파병, 외교적 도움까지 아끼지 않았다.
지금도 미국은 정보전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으며 일본과 함께 ‘한-미-일 삼각동맹’을 통해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는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한 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적인 북한을 미국보다 먼저 표기하는 것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안보관의 문제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내 대형 언론, 방송사들 역시 ‘북미관계’라는 단어를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북한은 표면적으로는 화해무드를 조성한 후 무력도발을 감행하는 ‘화전양면전술’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가 휴전 이후 60년간 바뀌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대남 비난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는 이유를 들어 ‘국방위원장’이라는 직함을 붙여 김정은을 호칭하는 것은 도리에 맞다고 보기 힘들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일본은 국왕인 아키히토(あきひと)에 대해 천황(天皇)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하늘의 황제’, 곧 ‘만물을 지배하는 황제’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일왕(日王)이라고 칭한다. ‘일본의 왕’이라는 뜻이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일왕 대신 천황이라는 호칭으로 아키히토를 부른다면 아키히토가 만물을 지배하는 황제라고 추켜세우는 셈이다.
김씨 일가의 직함 역시 마찬가지다. 직위의 이름인 직함을 인정한다면 직위를 인정하는 것이고 직위를 인정한다는 것은 곧 직위가 속한 조직, 조직이 속한 체제, 국가를 인정한다는 뜻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언론, 방송사에서는 아키히토에게는 일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김일성에게는 주석, 김정은에게는 국방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직함을 빠짐없이 붙인다.
히틀러와 스탈린 역시 각각 독일의 총통과 소련의 총리를 맡았지만 직함을 붙이지 않고 이름으로만 호칭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국민들의 국가관과 안보관을 뒤흔들고 혼란시킬 수 있는 적절치 못한 표현이 대형 언론, 방송사를 위시해 사용되는 가운데 ‘북미관계’를 ‘미북관계’ 등의 표현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오상현 press@bluetoda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