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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전날 옥중 순국' 한 유상근 선생 12월 독립운동가

기사승인 2018.12.03  00: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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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애국단 입단을 기념해 태극기 앞에서 촬영한 독립운동가 유상근의 사진. 사진=독립기념관 제공

국가보훈처가 30일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일본군 고위장교 처단 계획을 실행하려다 붙잡혀 광복을 하루 앞두고 옥중 순국한 한인애국단원 유상근(柳相根, 미상~1945. 8. 14.) 선생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선생은 한학을 공부하다 10세 되던 해 통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집안 사정으로 북간도 연길현 2도구로 이주했고, 봉밀구(峰密溝) 필산촌(畢山村)을 거쳐 용정촌으로 가 동흥중학교에서 1년간 수학했다. 재차 화룡현으로 이주한 뒤 19세 되던 해 이모부인 이종익이 있는 하얼빈으로 갔다.

하얼빈에서 생활하던 선생은 1930년경 상하이로 갔다. 상하이에서 김구를 만났고, 그의 도움으로 영국인이 운영하는 버스회사의 검표원으로 취직했으나 궁핍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홍콩과 광둥지방을 오가며 인삼장사를 했다.

중국정부는 1931년 9월 18일 만주를 침략한 일본을 국제연맹에 제소했다. 국제연맹은 릿튼(lytton)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했고, 조사단은 5월 26일부터 다롄(大連)에 오게 되었다. 김구는 일본군 고위관료가 조사단 환영식에 참가하면 이들을 처단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1932년 1~2월경 김구의 부름으로 상하이로 돌아온 선생은 2월 24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했고, 4월 27일 윤봉길의사가 홍커우공원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폭탄을 들고 다롄으로 갔다.

선생은 의거를 위해 미리 가있던 최홍식을 다롄에서 만났고, 이성원?이성발 형제의 협조를 받아 거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거사 이틀 전인 5월 24일 최홍식이 상하이로 보냈던 전보가 추적당하여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선생은 다롄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살인예비, 폭발물취체규칙 위반'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을 하루 앞둔 1945년 8월 14일 뤼순감옥에서 순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유상근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박상준 press@bluetoday.net

<저작권자 © 블루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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