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일본정부가 납치피해자로 인정하고 있는 17명의 납치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당시의 연령과 실종 장소).
북조선(북한)측은 구메씨의 입국을 완전 부인하고 있다. 수사당국은 주범격인 북조선(북한) 공작원 김세호에 대해 2003년 1월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국제수배했고 일본정부는 북조선(북한)측에 신병인도를 요구하고 있다. 2006년 2월에 열린 일조포괄병행협의에서 북조선(북한)측은 김세호에 관해 「그러한 인물은 모른다」고 하면서 일본측으로부터 관련정보가 제공되면 다시 조사하겠다고 대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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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에 열린 제3차 실무자협의에서 북조선(북한)측은 메구미씨가 1994년 4월에 사망했다며 「유골」을 제출했으나, 메구미씨의 「유골」이라고 한 뼈의 일부에서 동인의 것과 다른 DNA가 검출되었다는 감정결과가 나왔다. 요코타 메구미씨의 남편이 1978년에 한국에서 납치된 당시 고등학생 한국인 납치피해자 김영남씨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2006년 4월에 일본정부가 실시한 DNA 검사에 의해 판명되었다. |
2002년 10월에 쿠알라룸프루에서 열린 제12차 일조국교정상화협상 및 2004년에 세번에 결쳐 열린 일조실무자협의에서 일본측은 북조선(북한)측에 관련정보 제공을 요구했다. 그러나 북조선(북한)측은 제3차 실무자협의에서 북조선(북한)에 입국한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일본정부는 2005년 4월에 다나카 미노루[田中實]씨를 북조선(북한)에 의한 납치사건으로 인정한 후 북조선(북한)측에 대해 즉시 귀국 및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회답이 없다. |
5. 1978년 6월 리은혜 납치사건
1987년 11월의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실행범인 전 북조선(북한) 공작원 김현희 씨는 「리은혜」라는 일본인 여성으로부터 일본 사람의 행동법을 배웠다고 증언했다. 이 「리은혜」라는 일본인 여성은 행방불명이 된 다구치(田口)씨로 추정된다. 북조선(북한)측은 다구치씨가 1984년 하라 다다아키 [原敕晁]씨와 결혼하고, 1986년 하라씨가 병사한 직후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 등이 제공되지 않았다. 2009년 3월 김현희 씨와 이이즈카[飯塚] 씨와의 면회에서, 김 씨로부터 다구치 씨의 행방에 관한 새로운 주요 참고 소식을 확보했다. (주)김 씨의 발언:「1987년 1월 마카오에서 돌아와서 2월내지 3월 무렵에, 운전 기사로부터 다구치 씨가 어딘가 모르는 곳으로 끌려갔다고 들었다. 1986년에 독신인 피해자를 결혼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다구치 씨도 어딘가로 가서 결혼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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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1980년에 북조선(북한)에서 결혼하고 2002년 10월에 일본에 귀국했다. 딸 1명과 아들 1명은 2004년 5월에 귀국했다. 수사당국은 납치 실행범인 북조선(북한) 공작원 통칭 최순철에 대해 2006년 2월에, 또한 공범자인 자칭 한명일(통칭 한금녕) 및 통칭 김남진에 대해 2007년 2월에 각각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국제수배하는 한편, 일본정부는 북조선(북한)측에 신병인도를 요구하고 있다. |
북조선(북한)측은 두 사람이 1979년 7월에 결혼하고 이치카와 슈이치씨는 동년 9월에 심장마비로 사망, 마스모토 루미코씨도 1981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 등이 제공되지 않았다. |
히토미씨는 2002년 10 월에 일본에 귀국했다. 남편(젠킨스씨, 미국인)과 2명의 딸도 2004년 7월에 일본에 귀국했다. 수사당국은 납치 실행범인 북조선(북한) 공작원 통칭 김명숙에 대해 2006년 11월에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국제수배하는 한편, 일본정부 는 북조선(북한)측에 신병인도를 요구하고 있다. |
1988년에 이시오카씨가 일본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폴란드 소인)가 도착해, 이시오카씨와 마쓰키씨 그리고 아리모토 게이코[有本惠子]씨가 북조선(북한)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북조선(북한)측은 이시오카 도오루씨가 1988년 11월에 가스중독으로 아리모토 게이코씨와 함께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 등을 제공하지 않았다. 또한 마찬가지로 마쓰키 가오루씨에 대해서도 북조선(북한)측은 1996년 8월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북조선(북한)측은 2002년 9월 및 2004년 11월에 열린 제3차 일조실무자협의 등 두번에 걸쳐 마쓰키씨의 「유골」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제공했지만 그 중 일부에서 동인의 것과 다른 DNA가 검출되었다 는감정결과가나왔다. |
이 납치사건에 대해서는 북조선(북한) 공작원 신광수가 한국 수사당국에게 하라씨 납치를 증언한 바 있다. 수사당국은 신광수에 대해 지금까지 하라씨로 위장한 용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국제수배하는 한편 일본정부는 북조선(북한)측에 신병인도를 요구해 왔다. 그리고 2006년 4월에는 납치사건의 주범으로서 신광수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북조선(북한)측은 신광수의 신병인도에 응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동인을 「영웅」으로 우대하고 있다. 또한 수사당국은 하라씨 납치사건의 공범자인 김길욱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국제수배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북조선(북한)측은 하라씨가 1984년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와 결혼하고 1986년에 간경변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 |
「요도호」범인의 전처가 북조선(북한) 당국과 협력해 아리모토씨를 납치한 사실을 증언했다. 수사당국은 납치 실행범인 「요도호」 범인 우오모토 기미히로[魚本公博] (구성[舊姓]:아베[安部])에 대해 2002년 9월에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국제수배하는 한편, 일본정부는 북조선(북한)측에 신병인도를 요구하고 있지만 북조선(북한)측은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북조선(북한)측은 아리모토씨가 1988 년 11월에 가스중독사고로 이시오카 도오루씨와 함께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 등을 제공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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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호 press@bluetoday.net